Vol.4존재의 이유, 스스로 조각하는 유일한 기념비 당신은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기 위해 태어난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나의 인생에도 정해진 매뉴얼이 있을 것이라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좋은 대학에 가고,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면 비로소 '쓸모 있는 인간'이 될 것이라는 환상.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의자가 '앉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도 어떤 목적을 부여받고 태어났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틀렸다.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precedes essence) 의자는 만들어질 때부터 앉기 위한 본질이 정해져 있다.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세상에 덩그러니 '던져진(Thrownness)' 존재다. 태어난 이유?그런 건 애초에 없다.우리는 먼저 존재하고, 그 후에 스스로 무엇이 될지를 결정해 나가는 유일한 생명체다. 그런데 왜 당신은 아직도 세상이 정해준 '본질'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하는가?왜 남들이 좋다는 직업,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의 방식이 당신의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하는가?타인이 정한 궤도를 도는 삶은,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레디메이드(Ready-made)', 즉 공산품의 삶일 뿐이다. 존재의 이유(Raison d’être)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발명하는 것이다. 거친 아스팔트 위에서 피어나는 스트릿 컬처를 보라.그들은 규정되지 않기에 아름답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벽에 그림을 그리고, 기괴한 음악을 만든다. 누가 시켜서? 아니. 그들 스스로가 그것을 자신의 본질로 정했기 때문이다.그 '무용(無用)'해 보이는 짓들이 모여 가장 뜨거운 문화를 만들었다. 'What is my name'이 당신에게 전하는 마지막 철학은 이것이다. 당신의 이름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우리의 '네임웍스(Nameworks)' 라인은 빈 캔버스다.그 위에 당신이 정의한 당신의 이름, 당신의 신조를 새기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우주를 선포하는 깃발이 된다. “나는 이렇게 살기로 결정했다.이 결단만이 당신을 세상의 수많은 배경들로부터 분리해 주인공으로 세운다. 당신이 숨 쉬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지 마라. 당신이 오늘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분노하며, 어떤 이름을 걸고 세상과 맞짱 뜰 것인가. 그것이 바로 당신의 존재 이유다. 우리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이름을 잃어버린 채 부유하던 유령들의 시대는 끝났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새긴 자들의 연대. 그 거칠고도 우아한 행진을 시작하려 한다. 당신은 부속품인가, 아니면 유일무이한 걸작인가.선택은 끝났다. 증명하라. Define yourself, or be defined.What is my name.